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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06년 부활 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4-10
  • 조회수 :  1205

2006년 부활 메시지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 118,24.29)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이 교우 여러분들의 가정과 세상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상에 무참히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살지 말고 당신과 함께, 당신을 위하여 살도록 우리를 교회에 초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만이 진정 자기와 이웃을 위한 참 삶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1.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의 질서를 아름답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그 어렵고 고통스럽던 엄동설한이 소리 없이 물러나고 만물이 소생되는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었던 것 같던 초목은 각기 자신들의 아름다운 자태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어떤 초목은 봄이 와도 피어나지 않고 겨울의 모습 그대로인 것도 있습니다. 자신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했던 초목은 봄이 와도 죽음의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음을 보게 됩니다.

 


2.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다같이 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죽을 운명이 분명한 육체에 따라 살면 죽음으로 끝나고 생명을 지니고 살면 우리의 죽음이 죽을 때 그 속에 살아있는 생명은 새로운 삶으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 해야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 하여라”(루카 12,5).

 


3. 이러한 생명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지혜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의인을 억누르고 과부라고 보아주지 말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고 존경할 것 없다. ···우리 힘이 의로움의 척도가 되게 하자. ···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하는 의인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보자.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런 죽음을 내리자”(2,1-20 참조). 이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약 100년 전의 말씀이지만 예수님의 일생을 듣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 결과에 대한 말씀은 예언같이 들립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 3,1-4).

 


4.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인류 역사 안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복되며 지혜로운 사람들이 직관하던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일생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오해하고 수난과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지 못하고 도망갔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 주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서야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사도로 파견 될 수 있었습니다(사도 1-2장 참조). 이런 인생의 갈림길을 복음서는 부활날 아침에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빗장을 걸고 집안에 있었으며 몇몇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러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신이 있어야 할 돌 무덤은 비어 있고 천사들이 그들을 맞으며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 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6-7).

제자들은 말씀에 따라 갈릴래아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 구원을 위해 당신 성자를 파견하신 것처럼, 구세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시게 됩니다(요한 21,1-19; 마태 28,18-20 참조). 그리고 파견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걸으신 구세주의 길을 따라 증인으로서 수난과 순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사도행전 참조). 이는 12사도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모습이며 삶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얻게 됩니다(사도 11,26). 또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1베드 2,9-10) 라는 확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5.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며 같은 모습으로 살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문화가 설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생명의 문화를 선포하고 예수님처럼 생명의 문화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문화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겪으신 시련(마태 4,1-11)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에서는 신자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하며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릇된 자기 사랑과 오만 때문에 날마다 위험을 겪고 있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정화하고 완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고백합니다”(37항).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섭리에 신뢰하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진보와 발전이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늘 정신을 새롭게 하며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할 수 있도록 힘쓰며’(로마 12,1-2 참조) 생활의 변화에 힘씁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우리 모든 죄인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시며 당신 표양으로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어깨에 육신과 세상이 지워주는 십자가도 지게 됩니다”(38항).

그러나 우리의 이런 삶 속에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며 성부께로부터 모든 권한을 받으신 성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의 힘을 넣어주시며 다가올 세기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실 뿐 아니라, 그 열망으로 인류 가족이 자신의 삶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교회헌장 40 참조), 온 땅을 이 목표에 이르게 하려는 간절한 희망을 일깨우시고 정화하시며 북돋아 주십니다(사목헌장 38, 교회헌장 34). 우리 모두 말로써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생활로 부활 축제를 지냅시다(성 아타나시오).  

  

6. 이와 같은 희망찬 삶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선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며 특성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오해하며 미워하더라도 우리는 죄스런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견디며 우리 자신들과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바오로 사도와 함께 마음으로부터 고백하고 이겨냅시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준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 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 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코린 6,1-10). 왜냐하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우리의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3,22-23). 이처럼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필립 4,12-13).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그리고 온 세상에 가득하시기를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4월 16일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광주 대교구

 

 

 

                             교구장 최 창 무 안드레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