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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07년도 교구장 부활 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4-10
  • 조회수 :  1147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서 어둠과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알렐루야!

 


1. 빛 속에서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교회는 전례력의 두 기둥인 성탄과 부활 대축제를 어둠이 가장 짙은 한 밤중에 거행합니다. 구세주 예수님의 성탄은 밤이 가장 길고 깊은 동짓날 무렵의 한 밤중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 후 둥근 달이 밝은 빛으로 밤을 비추는 한 밤중에 경축합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 안에서 때를 가리어 이 두 가지 신비를 경축하는 교회의 전례는 우리의 일상이 단순히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구원의 신비가 담겨 있고,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지 180여 년 그리고 교구가 설정된 지 7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쇄신과 발전을 다짐하는 우리에게 어둠속에서 거행하는 빛의 축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부패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이 사회의 어두운 현실은 ‘빛의 자녀’인 우리의 소명을 상기시키며, ‘빛을 찾아’ 나서도록 촉구합니다. “밤이 깊으면 별이 더욱 빛난다(夜深星逾輝)” 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16) 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오늘의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따라, 빛 속에서’ 걷도록 변함없이 우리를 재촉합니다. 교구 설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쇄신과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며 지내는 부활 대축일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귀담아 들읍시다: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惡意)와 사악(邪惡)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1코린 5,6-8)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님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셨으나(요한 8,12), 어둠속에 머물러 있는 세상 사람들은 이 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1코린 2,8). 어둠의 세력들인 기득권자들의 욕망, 권력, 재산, 그리고 공명심은 민중을 선동하여 빛을 거부하고 생명이신 주인을 없애버리려 했습니다(요한 8,21-59; 지혜 1,16-2,24 참조).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훈계를 들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 13,11-12, 에페 6,10-20 참조).

 


2.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1-22; 2코린 5,11-21)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누구든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 행복하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더구나 그 사랑이 스러져 가는 것이 아니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당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고(루카 22,14-20)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요한 13,1).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당신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요한 15,11-17).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세주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하느님이시기 때문에(요한 5,19-39; 10,11-18 참조) 인간이 사랑하듯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당신처럼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당신과 일치시키는 분이십니다(호세 11,1-9, 이사 49,8-25; 54,9-15,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와 2007년 사순절 메시지 참조). 우리 하느님은 죄스런 세상과 사람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살리시며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요한 3,16; 에제 18,21-23. 31-32; 지혜 11,23-12,2 참조). 죄 없는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심으로써 우리는 새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사 53,1-12; 2코린 5,21).

 


3.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금년은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민족들의 발전”(1967.03.26)을 발표하신지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발전”은 “평화”의 새로운 이름이라고 하시며(76항) 민족들의 발전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하시고 참된 발전은 “새로운 휴머니즘”이 이룩되고(20항), 가치질서가 보존될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18항).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란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신앙과, 만민의 아버지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생명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불러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정신적 일치”(21항)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죽음은 죽음을 불러들입니다.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죽을 운명의 인간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이시어 죽음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해 주시고(필리 2,6-11참조)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 탈출 20,1-17 참조) 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노인, 불의하게 천대받는 외국인 노동자, 피난민, …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은 생명자체를 거역하는”(민족들의 발전 66-75) 반인륜적이고 반생명적 죽음의 문화를 펴가고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52-74 참조). 특별히 오늘날 우리 지역에서는 부당한 대우로 신음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국제결혼을 통해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이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천적으로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더욱 뚜렷이 밝혀줍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이런 삶이 곧 ‘빛 속에서’ 걷는 것이며(1요한 1,7 참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의 문화” 속에서 “생명의 문화”를 펴가는 것입니다(디오그네 편지 5-9장, 진리의 광채 88항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마치 밀알이 썩어 새싹을 내듯 “생명의 백성,” “생명을 위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101항 참조).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필리 2,15)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모든 범죄는 인간 평화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바오로 6세, 1977 평화의 날 담화)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이 이번 춘계총회를 마치며, “생명 문화를 향하여”, 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이러한 취지에서 입니다(2007.03.15).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생명의 복음을 주셨고, 바로 이 복음으로 우리가 변화되고 구원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백성입니다”(생명의 복음 79). 죽음의 운명이 분명한 우리는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었고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 파견된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79항). 그러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기쁨과 희망 속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2코린 4,11-12). 이 말씀으로 세상은 주지도 않고 줄 수도 없는 참 평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이 베푸시는 평화(요한 14,27; 20,19-23)가 믿는 우리에게 내리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우리 모두와 이 지역에 풍성히 내리기를 축원합니다.

 


                                                    2007년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최  창  무 안드레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