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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09년 예수 부활 대축일 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4-10
  • 조회수 :  1330

“주님의 오른손이 드높이 들리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시편 118,16-17)


  예수님께서 온갖 무지와 오해, 박해와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온 누리에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시 기쁜 부활절을 맞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2000여 년 전 팔레스티나에서 일어났었던 역사歷史만이 아니고,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시는 결정적인 역사役事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구원의 여정을 계속하려는”(사목헌장 3항) 교회에게, 부활절은 단순한 회상이나 반복하여 기념하는 행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으로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을 이긴’(요한 16,33)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도전이자 드러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2000여 년 전 예수님이 사셨던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온갖 모함과 거짓 증언과 증오로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았던 세상의 죄는 지금도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이들을 온갖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의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이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구원과 해방의 진리입니다(요한 3,16-21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죽음과 부활의 신비는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눈이 가리어”(루카 24,16) 알아보지 못하여 “대수롭지 않게”(이사 53,3)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활의 아침을 증언한 성경 말씀에 머물며 우리도 “우리 마음이 속에서 타오르는”(루카 24,32) 체험을 통해 부활의 신비에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1.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당황한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들으며 현세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였으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묻히심은 그들의 기대와 희망 모두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이 감당해내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자 실망이었으며, 그 화禍가 자신들에게도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을 함께 따랐던 몇 명의 여자들이 안식일이 지나 무덤에 가 보았더니 빈 무덤이었다는 소식은 그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하였습니다. 빈 무덤 안에 있던 웬 젊은이가 여자들에게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6)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루카 복음사가는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루카 24,5-6)며 여자들을 나무라듯 표현하고 있으며, 마태오 복음사가는 주님의 천사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연이어 나타나시어(마태 28,1-8; 9-10)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랠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고,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제자들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자들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는 무덤으로 달려 들어가 보고서야 비로소 믿습니다(요한 20,1-10 참조). 요한 복음사가는 제자들의 이 당혹스런 입장을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 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9)고 애써 해명합니다.

 

2. 예수님의 성경풀이로 마음이 다시 타오른 제자들

루가 복음사가는 자신만의 새로운 사실로 부활의 아침을 이야기 합니다(루카 24,13-35참조).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엠마오 마을로 가면서 예루살렘에서 그동안 일어난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걷게 되었는데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16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무지를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25절)고 나무라듯 말씀하시며 성경을 풀이해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경풀이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해 주시기를 청하며 붙들게 됩니다(28-29절 참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30절) 주심으로써 고난을 겪기 전 제자들과 가졌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서로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32절)

 

3.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빛을 찾은 제자들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33-34절) ‘돌아감’은 회심回心입니다. 자기이념과 기대에 갇혀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동행과 가르침으로 힘을 받아 자기내면의 세계를 벗어나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로워진 것입니다. 동시에 ‘빵을 떼어 나눔’은 파스카의 기억(루카 22,14-20; 사도 2,42-47; 4,32-37; 5,12-16 참조)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으로 축성되었음을 새롭게 일깨웁니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 안에서 세상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의지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채 ‘자기만의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며, 성경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파스카의 기억(성찬)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무지하고 굼뜬 우리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참 빛’이십니다(요한 1,9-14 참조).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히브 2,9-11).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구원여정입니다(파스카의 신비).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 라고 일깨우시던 말씀으로 눈을 뜹시다. 우리가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에서 고통과 절망, 슬픔과 실망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믿음의 순수성을 위한 과정일 것입니다(1베드 1,6-23 참조). 우리가 받아들일 확실한 진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1티모 1,15), 하느님의 사랑은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참 빛’을 통한 세상의 구원(요한 3,16-21 참조)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가려지고 닫힌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참 빛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성찬의 기억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자신의 세상에 갇혀있던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하느님의 사람으로 돌아서는(회심)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사도 9,18). 부활로 주님이 되시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마태 28,18)께서는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에서 우리도 ‘완전한 사람’(마태 5,48)이 되라고 일깨우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뜻을 채워드리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매일 매일 거행되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축성된 우리의 처지를 새롭게 일깨우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있습니까? 기도와 극기, 이웃 형제들에 대한 봉사와 덕의 실천에 꾸준히 헌신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교회헌장 42항 참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갈수록 개인의 행복과 권리에 대한 지나친 주장으로 공동선에 대한 가치가 흔들리고 있으며, 집단의 이념과 이해가 결탁하여 증오와 대립이 증폭됨으로써 불안을 조성하고 있고, 개발을 통한 고속성장의 환상 속에서 생태계 훼손과 함께 인간관계마저도 파괴되는 갈등의 상황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권고합니다.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1) 또 우리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간절한 청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6-17)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던”(필리 2,7-11)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당신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라는 찬송과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라는 권고를 되새기며, “악에 굴복 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켜”(로마 12,21) 죄로 물들어 있는 세상에 은총의 열매를 끊임없이 드러내도록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몸으로 채워가는(콜로 1,24 참조)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2코린 2,14-15)

 

2009년도 부활절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최  창  무  안드레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