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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10년 교구장 부활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0-03-30
  • 조회수 :  1427
부활 메시지 2010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스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까지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마르 12,30-31)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으뜸이라고 가르치셨고, 당신 스스로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외아들까지도 기꺼이 내어주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뜻을 받들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의 표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그런 깊은 뜻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 소경을 보게 하시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배부르게 먹이셨고, 더욱이 야이로의 딸이나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영험한 능력을 목격하고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처참하게 최후를 마치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청하기도 하고, 또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 예고를 하시자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라고 했다가 꾸중을 듣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너무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마태 16,23)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 15,34)라고 부르짖으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을 그토록 탐내던 제자들은 막상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왕’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우도와 좌도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줄행랑을  치고 맙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며 섬겼던 몇몇 여인들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싸늘하게 식어버린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되고 “그 입구는 큰 돌을 굴려 막고” 그것도 불안했던지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들을 세워 지키게까지 하였습니다(마태 27,60-66). 예수님 사건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나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다음날, 십자가 아래 서 있었던 그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향료를 샀습니다”(마르 16,1) 그리고 주간 첫날 이른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뜻밖에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랍니다.
 
   숨을 거두신 지 사흘이나 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봉인된 차가운 돌무덤을 박차고 나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받들어 죽기까지 순명하신 효성스러운 아들의 죽음에 부활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두움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에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었던 시신이 다시 소생했다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종말이 오면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을 받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부활이 그 첫 열매이며 이로써 세상 끝날 이루어질 모든 이의 부활이 기정사실화되고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 주님처럼 부활하리라는 확신과 생생한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6-4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막연히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성장하는 삶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은총을 주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 때 비로소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깨닫고 우리의 신앙체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참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내몰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목헌장은“현대세계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슬픔과 번뇌”(1장)라고 천명합니다. 이들의 슬픔과   번뇌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어져야 할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고, 그분이 우리 희망의 근거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자신의 삶도 힘겹지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의 짐을 나누어지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가진 것을 내어놓고 그들 안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며,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릴 사람들입니다.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시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