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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

2015년 교구장 성탄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5-12-21
  • 조회수 :  1003

<2015 성탄메시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랑하는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큰 빛이 어둠에 휩싸인 이 세상을 따스하게 비춥니다. 그 빛은 참 생명의 빛이며, 우리에게 참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구원의 빛입니다. 이 빛이 우리에게 오심에 감사드리며,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분들과 북녘의 동포들과도 이 기쁨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특별히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생사의 기로에 있는 백남기 형제와 가족들에게도 따스한 주님의 빛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또한 생의 여정에서 겪고 있는 수많은 시련과 아픔으로 지친 모든 이들, 특히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부당하게 해고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신 분들, 경제논리에 항상 첫 번째로 희생되는 농민들의 마음 안에도 아기 예수님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이 아기 예수님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성탄을 통해 하느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처지가 되셨다는 것은 가장 완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고통과 슬픔, 불안과 공포, 갈등과 두려움을 겪으며 힘들어 하는 우리와 함께 해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처지를 공감하시고 동반해주시는 분이 늘 우리 곁에 계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우리들에게는 큰 위로와 더불어 희망을 찾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그 자체로 은총의 선물입니다.


특별히 올해 성탄은 ‘자비의 해’를 시작하며 기념하는 은혜로운 때로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깊이 체험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동반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착한 목자의 애틋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찾아 나서십니다. 결코 우리를 외면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번 성탄에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합시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우리가 사랑 받는 존재임을 더욱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의 은혜로운 결실이 될 것이며, 결실의 열매는 공감과 연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공감과 연대의 모습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사라지면서 공동체성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근본 원인은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적인 생활방식의 확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가난하고 나약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차별의 골이 깊어지고 소외 받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세대 간 공감과 소통이 약해지면서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려는 사람들은 약물이나 잘못된 종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거룩함을 우리 스스로가 훼손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공감과 연대가 사라진 세상은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랑과 자비의 세상이 아니라 미움과 불신이 팽배한 비인간적 세상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소통과 원활한 갈등 조정을 통해 국민을 통합해야할 의무를 지고 있는 정부가 도리어 국민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회가 점점 피폐해지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민족의 분단 70주년을 맞이한 올해도 남북관계가 조금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 문제를 정부 당국과 정치인들의 전유물로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비우시고 우리와 똑같은 처지가 되어 오심으로써 삶의 희망을 찾게 해주십니다. 심지어 당신을 학대하는 이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자신들의 거룩함을 찾을 수 있는 여정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이 자비로운 초대에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그분께로 나아갑시다. 그런데 이 초대에 응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하면서 부도덕한 현실과 타협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점점 무력감에 사로잡혀 어둠 속에 빠져 들어 마침내 절망하고 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를 발휘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동반하시는 하느님 사랑을 체험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공감과 연대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이 나타내는 감동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늘 함께 하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을 우리 안에서 되살리는 이는 이 세상에 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본당이 무관심의 바다에서 자비의 섬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하느님 자비가 널리 확산되는데 있어 중요한 곳이 본당 공동체입니다. 지역 사회와 가장 구체적이고도 밀접하게 삶을 공유하고 있는 본당 공동체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성을 실행한다면 외로움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하느님 자비를 더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종께서는 우리 모두 “자비의 일꾼”, “희망의 지킴이”가 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리고, 약자와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며 연대하는 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자비의 일꾼, 희망의 지킴이가 됩시다. 주님께서 그 길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며 이 여정을 함께 걸어가기를 희망하는 분들에게는 하느님 자비를 더욱 깊이 체험하는 은혜로운 성탄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한 형제자매인 여러분!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의 동반자로 오셨음을 경축하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늘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성탄 대축일


김희중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