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보기

담화문

2016년 예수 성탄 대축일 교구장 메시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6-12-13
  • 조회수 :  963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어둠이 세상을 온통 뒤덮고 있을 때, 창조주 하느님께서 빛을 생겨나게 하시어 세상을 아름답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이(창세 1,1-5 참조)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세상의 어둠을 뚫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으로 오셨습니다.


이 참 빛이 어린아이에서부터 구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마음을 비추어, 어둠의 수렁에 빠진 우리나라의 미래를 새롭게 밝히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촛불로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들의 의로운 분노가 이 촛불의 파도로 물결치면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빛나는 결의로 타오르고 있음에 절로 숙연해집니다. 그 결의에 깊은 연대와 지지를 표명합니다.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우리 국민의 민심을 들끓게 했던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은 박근혜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배타적인 기득권을 영속화하려는 부패한 세력들의 집단적 탐욕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특히, 이 집단은 권력 앞에서 한없이 몸을 낮추는 검찰과 법원, 올바른 보도의 책무를 잊고 유사 권력이 되어 진실에 눈감은 언론, 진리는커녕 불의한 권력의 노리개로 전락한 일부 학계와 정경유착을 통해 승승장구했던 일부 재벌들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은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추악한 뿌리와 더불어 무능하고 불의한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타락상을 아주 참담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 촉구는 국민에게서 부여받은 권력을 부당하게 사유화함으로써 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고 도덕적 신뢰를 저버린 데 대해 주권자가 내리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또한 전국에서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시민들의 촛불은 공정이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아모 5,24 참조)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갈망이며 외침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위한 갈망인 촛불 민심


전국 곳곳에서, 세계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는 촛불 민심이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심판이면서 또한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갈망의 징표라면, 이제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나라를 향한 갈망은 촛불 민심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가난하고 배경이 없어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는 나라, 장애인과 그 외의 사회적 약자들도 인간의 품위를 보장받는 나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하고 누구나 일자리 걱정 없이 삶의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나라, 어린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안전한 나라, 식량자급산업인 농업이 중요시되어 그 어느 농민도 백남기 형제처럼 국가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는 나라, 어느 누구도 정치적 노선 차이로 억울한 호소를 할 필요가 없는 나라, 친일 부역자들과 군부독재 역사가 미화되지 않는 나라를 우리 국민은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국민들이 기꺼이 촛불 행진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재건하는 데 해결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닥쳐 있음도 사실입니다. 사람이 제도로서의 국가보다 우선시되고 무절제한 자본주의 경쟁보다는 인간이 경제의 중심이 되며, 국가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의 행복과 품위 있는 삶, 그리고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명백히 확인해야 합니다(대한민국 헌법 제10조; 「간추린 사회 교리」 388항 참조). 또한 정치와 경제, 검찰과 언론, 재벌의 개혁 없이 우리나라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개혁을 이루도록 뜻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요한 묵시록의 이 말씀은 로마 제국 황제의 박해와 압제로 억눌린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제시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4) 이 말씀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 “다 이루어졌다.”(묵시 21,6)고 말씀하십니다.


이 약속은 아기 예수님께서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시고 빛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써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어 세상의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세상의 권세를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한 봉사로 바꾸어 놓으셨고,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구유 앞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간 세상에서 새로운 전환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 4,4)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암울한 시대, 격동의 시대, 위기의 시대 또는 잔인한 시대 등으로 특징짓지만,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 지상에서 지내는 우리의 시간은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은총의 시간으로 변모되었고, 우리가 겪는 삶의 경험들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픔, 아픔, 억울함, 두려움, 분노, 고통과 같은 온갖 어두운 경험들조차도 우리 역사의 여정에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참 평화와 자유로 가는 길의 나침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구유는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해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 모두는 구유 앞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과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비움과 나눔의 방식으로,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의 방식으로, 강함이 아니라 약함의 방식으로, 무절제한 경쟁문화가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상생의 문화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유의 방식이며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유 앞에서 우리의 인생과 사회, 그리고 세상을 우리가 보아왔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방식으로 다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방식이 아니라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방식을, 나의 계획과 나의 설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사람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2017년 새해를 구유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모든 사람의 빛으로 오신 예수 성탄 대축일을 교구민과 함께 기뻐하며,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불의한 세상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더욱 북돋아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2016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