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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공지

2024년 교구장 부활 메세지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4-03-28
  • 조회수 :  928

2024년 광주대교구장 부활메시지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이 우리에게 더 큰 사랑으로 오신 것입니다. 파스카 축제인 주님 부활 대축일 복음에서 여인들은 주일 아침 일찍 해가 떠오를 무렵 미리 사놓은 향료를 들고 주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무덤을 막고 있는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돌이었습니다.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그러나 서로 걱정하며 무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돌은 굴려 치워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수고를 헛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임에도 향유를 들고 길을 떠나는 여인들을 보며, 그들이 지녔던 희망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주님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그녀들의 사랑은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희망이 바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우리 삶을 가로막는 커다란 돌은 희망이라는 움직임 앞에서는 결코 장해물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삶을 간절히 원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신학생 때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9살 본당 소녀 스텔라가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여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영혼이 이대로 세상을 떠날까 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졸음 운전하던 상대방의 차에 큰 사고를 당한 스텔라는 갈비뼈가 일곱 군데나 부러지고 다리뼈도 많이 부서져 대학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9일 만에 깨어나 한 달 동안 중환자실 생활을 하다가 담당 의사의 말처럼 기적적으로 회복하였습니다. 지금도 한쪽 다리가 짧아 오래 걷지는 못하지만 결혼하여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스텔라의 어머니 실비아 자매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학사님 저는 괜찮은데 우리 스텔라가 걱정입니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며칠이 고비라고 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자신도 많이 다치셨음에도 딸을 먼저 걱정하시던 실비아 자매님의 말씀과 눈물을 생각하면,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삶을 절로 묵상하게 됩니다.

 

벌써 10주기를 맞이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사건이며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진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목격하던 국민들은 설마 저렇게 큰 배가 쉽게 빠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과 수학여행을 떠났던 많은 학생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족들은 여전히 희생자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의 죽음이 다 안타깝지만, 특히 어린 영혼들을 먼저 보낸 부모님들의 눈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분들의 눈물을 통해, 장성한 아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 담대히 서 계셨던 성모님의 애끓는 심정 또한 헤아리게 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그 소식을 듣고 찾아갔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빈 무덤에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 삶의 현장에서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시고 표징을 보여 주시며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을 부르시던 갈릴래아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과정 없는 새로운 탄생이 아니고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서는 것이며, 슬픔에서 기쁨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다시금 허리띠를 동여매고 주님과 함께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삶의 고통을 넘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구원의 길이 될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고통은 필연적이고 우리가 희망하는 부활의 삶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입니다.

 

파스카(Pascha)란 말은 지나가다’, ‘건너가다’, ‘넘어가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한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본능에 따라 마음껏 재물을 취하고 욕심을 부리며 살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약육강식의 삶이 아닌 예수님의 희생처럼 이웃과 함께 사는 삶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웃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여기는, 이타적인 신앙인의 삶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밴 죄와 악습 그리고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주님께서 용서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갈릴래아로 건너오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202433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옥현진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