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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교구김대중재단, 7일 윤공희 대주교 백수연(百壽宴)개최...''민주, 자유, 인권정신 기려''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3-11-07
  • 조회수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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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 기자 = 김대중재단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자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의 백수연(百壽宴·100세)을 오늘(7일)오전 11시 라마다 프라자 충장호텔 12층 대연회장에서 개최했습니다.

이날 윤 대주교의 백수연에는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해 광주대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와 전임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 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윤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한국의 민주화와 정의 구현을 위해 역할을 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옥고를 치른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신다"며 "칭찬받을 사람이 아닌데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김대중재단이 주최하고 광주전남 김대중재단이 주관한 이번 백수연은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윤 대주교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윤 대주교는 1980년 광주대교구장으로 재임할 당시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직접 김수환 추기경 등 국내·외 언론과 유력 지도자들에게 참혹한 광주 실상을 알렸습니다.

또, 광주에 있는 미국인 신부와 광주 미국문화원장을 통해 미국 대사에게 ‘5·18은 계엄군의 잔혹한 살상과 폭력 때문에 발생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국제사회에 5·18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1924년 11월 8일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에서 4남 1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난 윤공희 대주교는 출생 하루 만에 유아세례를 받고, 빅토리노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1946년 3월 함경남도 덕원신학교에서 철학과와 신학과를 마치고 부제가 된 뒤 1950년 초대 원주교구장을 지낸 자신의 신학교 동기이자 세 살 위였던 고(故)지학순 주교와 함께 월남했으며 서울 가톨릭대학교 전신인 성신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故 노기남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아 서울 명동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했습니다.

또, 6·25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잠시 내려온 윤 대주교는 부산 UN포로수용소에서 종군신부를 맡았고 전쟁이 끝난 1954년에는 부산 가톨릭도서관 부관장을 거쳐 서울 성신중·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습니다.

이후 1956년 9월 로마 유학길에 올랐던 윤공희 대주교는 로마 울바노대학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0년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윤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총무를 맡았으며 3년 뒤인 1963년 10월 7일 교황청으로부터 수원교구장에 임명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20일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또한 1963년 12월 21일 초대 수원교구장에 오른 윤 대주교는 1967년 3월 24일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겸임하도록 교황청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하기 전인 1968년 4월까지 1년 동안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수행했습니다.

이 밖에도 윤 대주교는 수원교구장 재임 당시인 1967년 4월부터 1970년 10월까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임시의장을 거쳐 1975년 3월까지 주교회의 부의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윤 대주교는 지난 1973년 10월 25일 대주교로 승품됨과 동시에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했으며, 교구장으로 재임할 당시 대외적으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천주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윤 대주교는 광주민중항쟁이 끝난 뒤 당시 서울수도경비사령부에 있던 군종신부의 주선으로 1980년 7월 하순께 전두환 국보위 위원장을 만나 당시 구속됐던 사람들을 모두 사면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 추기경과 사면에 대한 논의 결과 자신이 직접 건의하겠다며 1981년 4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사형수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습니다.

윤 대주교는 1981년 5월 10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공동으로 주례한 가운데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미사를 봉헌하는 등 5월 항쟁이 끝난 뒤에도 5·18 당시 군인들이 시민들을 학살했던 장면이 담긴 사진 300여장을 실은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발행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등 광주의 아픔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을 이끌어 냈고 광주대교구장에 취임한지 27년만인 지난 2000년 11월 30일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한편, 천주교광주대교구는 지난달 20일 교구청 성당에서 ‘윤공희 대주교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를 봉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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