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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교구'흑산도 최초의 그리스도인', 그 파란만장한 삶과 기록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3-12-21
  • 조회수 :  206

기사원문링크

흑산성당은 손암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 온 지 153년이 지난 1958년에 건립됐다. 예리항과 흑산도 주변 섬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해변 몽돌을 자재로 사용한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성당이다. 건축사적으로도 의미를 지닌 건물로 2019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흑산성당은 공소가 6개나 된다. 2005년 기준 흑산도 주민의 36.4%가 천주교인이었다. 어느 곳보다도 천주교 주민 비율이 높다. 섬 주민의 존경을 받던 손암의 삶과 정신은 흑산도에서 천주교의 홀씨를 퍼뜨리는 데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구제품(救濟品) 신자도 있었다. 가톨릭 구제회는 전후(戰後) 빈궁에 찌든 흑산도 주민들에게 의약품 밀가루 같은 구제품을 보급했다.
  

예리항과 주변 섬들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흑산성당
▲  예리항과 주변 섬들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흑산성당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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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목포 본당의 신부였던 알베르 빅토 드예(Albert-Victor Deshayes) 신부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 주교에게 보낸 사목 서신에는 손암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 있다.
 

저는 정약전이 흑산에 있는 천주교인이 된 박인수(Pak in syou) 집에 귀양 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약전은 한국 성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자마자 주교님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최초의 교인에 대한 평판은 존경에 차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성실과 겸손과 정결함의 모범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드예 신부의 사목 보고서는 '흑산도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을 달아 은색 금속판에 새겨져 흑산성당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흑산성당 유창훈 요셉 신부는 "정약전이 살기 위해서 배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박인수라는 이름이 들어간 족보를 찾아내지 못했다. 손암이 지었다는 성가집도 발견되지 않았다.
 

흑산 성당 입구를 장식한 드예 신부의 사목보고서.
▲  흑산 성당 입구를 장식한 드예 신부의 사목보고서.
ⓒ 흑산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