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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0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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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 08일 (주일) 강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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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미사
2025년 04월 30일
[(백)부활 제2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 3,16-21)
CBCK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 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다

보도자료 원문링크1936.12.17.-2025.4.21.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다- 1936년 아르헨티나 출생, 1969년 사제품·1992년 주교품 받아- 199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임명, 2001년 추기경 서임- 2013년 제266대 교황에 선출, 사목 표어는 ‘자비로이 부르시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계승하며 가톨릭의 보편성 실현 노력- 12년 재임 중 47회, 70여 개국 해외 순방, 세계 평화를 위한 실천 독려- 끊임없는 한국 사랑… 2014년 방한, 한국 주교단과 2015·2024년 로마에서 만나- 생애 마지막까지 신자들 가운데에 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 로마 시각 2013년 3월 13일 저녁(로마 현지 시각)에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됐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바로 우리가 추모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1953년)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에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받던 중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했고, 동시에 사제성소를 느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표어인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복음서 기록에 관한 베다 성인의 강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베르골료는 1958년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 수련장과 관구장, 산미겔 철학·신학 대학 학장 겸 산미겔 교구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 주임 신부 등을 역임했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주교품을 받았고, 1998년 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됐으며, 200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2005년부터 6년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내며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밖으로 나가는 교회, 세상을 향한 발걸음2013년 3월 13일, 베르골료 추기경은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 투표)를 통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저의 형제 추기경님들께서 [로마의] 주교를 찾으러 지구의 끝까지 가신 것 같습니다”(선출 직후 첫 강복 메시지)라는 소감처럼, 그레고리오 3세 교황(시리아)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탄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콘클라베를 위해 소집된 추기경 회의에서 그는 ‘밖으로 나가는 교회’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쿠바 출신 동료 추기경이 전한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님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신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은 안에 계시면서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문을 두드리신다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가두고 그분이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게 한다.”(zenit.org, 2013.3.26.) 이는 그가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2013년)에서 말한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한다.그가 선택한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화의 사도이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했다. 성인의 삶을 닮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는 즉위 직후부터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즉위 후 9일 뒤 로마의 한 교도소에서 첫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재소자들의 발을 씻겼다. 2013년 7월 람페두사에서 난민들의 죽음을 환기하며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하던 목소리, 2014년 한국 방문에서 보여준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연민, 2020년 3월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두려워 떠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던 뒷모습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교황은 또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관심을 제도화하여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전례력 연중 제33주일)'과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7월 마지막 주일)'을 제정했다. 복음의 기쁨 전하며 공의회 정신 계승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하 ‘공의회’) 이후 사제품을 받은 첫 교황으로서, 가톨릭의 현대화(아조르나멘토)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공의회 정신의 계승에 심혈을 기울였다. 교황은 2015년 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으로 거행된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 미사에서 교회와 우리 시대 모든 이의 만남, 복음의 기쁨과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선교 열정, 민족과 계층을 초월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비를 실천하자고 권고했다.2022년에는 9년간 준비한 교황청 기구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안을 담은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2022.3.19. 반포, 6.5. 발효)는 개혁의 지향을 공의회의 쇄신 정신,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성, 친교 안에서의 공동 책임, 주교들의 사명에 대한 봉사, 보편성의 표현, 부(富)의 축소 등으로 밝혔다.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유럽인 성직자 중심으로 여겨지던 교황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재위 기간에 걸쳐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라오스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주교들을 추기경으로 발탁했으며,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복음화부 장관 직무 대행, 필리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성직자성 장관, 대한민국) 등 아시아 성직자,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수도회부 장관), 파올로 루피니 박사(홍보부 장관), 막시마노 카바예로 레도 박사(재무원장) 등을 교황청 관료로 등용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4편, 교황 권고 7편을 비롯해 자신이 반포한 공식 문헌들에서 기쁨, 자비, 생태적 회개, 형제애 실천을 강조했다. 아울러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현대의 위험인 고립과 자아도취를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을 모두와 나누며(「복음의 기쁨」),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에 가득 찬 영으로 다른 이들을 비추자고 요청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2015년 자비의 특별 희년에 조명한 착한 사마리아인 정신은 「모든 형제들」(2020년)에서 구체화됐다.교황은 「찬미받으소서」(2015년)를 통해 지구에 대한 인류의 관점을 쓰고 버리는 자원 창고가 아닌 ‘공동의 집’으로 전환시켰고, 창조 질서 수호를 위한 국제적 연대의 사명을 일깨웠다. 그는 정교회가 1989년부터 지내 온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2015년부터 가톨릭 교회 기념일로 지정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는 날로 만들었다.시노달리타스, 곧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에 대한 꿈은 그가 교회에 남긴 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의 어근인 ‘시노드’는 의미상 ‘함께+길’의 합성어이면서 교회 회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황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하며 제정한 세계주교시노드가 지역 교회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힘을 실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집한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는 가정(2015년 제14차), 청년(2018년 제15차) 등 현대 교회와 사회의 관심사를 짚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제16차 정기총회는 2021년부터 햇수로 4년간 이어졌다. 교회 자체를 성찰과 쇄신의 대상으로 삼은 이 정기총회 여정은 풀뿌리 교회 조직인 본당에서부터 교구, 주교회의, 대륙을 거쳐 두 차례 로마 총회(제1회기 2023년 10월, 제2회기 2024년 10월)로 수렴되었고, 폐막 후에도 전 세계에서 ‘이행 단계’(2025-2028년)로 이어지고 있다. 희망과 평화의 사도한국인에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잊지 못할 존재다. 2014년 8월, 재위 2년차 교황은 첫 아시아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AYD) 폐막 미사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는 말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주례하면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시복했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국가 단위의 주교단이 교황에게 지역교회 현황을 직접 알리고 논의하는 ‘사도좌 정기 방문’(Visita ad limina)에서도 교황은 한국을 향한 사랑을 전했다. 2015년 방문 중에는 한국 주교들에게 한국 사회의 현안을 묻는 한편, 현지에서 봉헌된 124위 시복 감사 미사에 부쳐 “평신도에 의해 시작됐고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한국 교회가 안락한 신앙을 버리고 아시아 교회의 빛이 되”기를 당부했다. 2024년에는 “분단된 한국, 고통의 상황이 속히 개선되고 종결되도록 기도”할 것을 약속하며,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교회, 열린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독려했다.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세계 평화를 위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7월 브라질부터 2024년 12월 프랑스까지 47회, 70여 개국을 사목 방문했고, 전쟁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교황 특사를 파견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을 여러 번 선포했다. 교황은 2013년 9월 7일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2018년에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 2020년에는 레바논,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2023년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식을 위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연대를 청했다.평화를 위한 교황의 기도는 병상에서도 계속되었다. 교황은 서면으로 발표한 2025년 2월 23일 주일 삼종기도 연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년을 언급하며,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중동, 미얀마, 수단 등 분쟁 지역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청했다. 병세가 완화된 24일에는 가자 지구의 본당신부에게 전화로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2025년 3월 23일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교황은 생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의 양 떼인 신자들과 함께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이었지만, 교황은 퇴원하던 날에도, 4월 6일 병자와 의료 종사자를 위한 희년 행사 현장에도, 성주간의 첫날인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도, 17일부터 이어진 파스카 성삼일과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즉위 직후 2013년 3월 28일(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때 사제들에게 권고한 대로, 교황은 끝까지 주님의 양(羊=신자)들 가운데에 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였다.2025년 가톨릭 교회의 정기 희년(25년 주기)을 선포하며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세계인의 가슴에 새기고, 희년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최근에 발행된 자서전 「희망」(Spera)에서 그가 사목 방문 때마다 찾아가 기도했던 로마 성모 대성전(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Maggiore)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50178?gb=K1300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2025-04-22
프란치스코 교황님 선종에 따른 전례 안내

† 하나됨을 위하여 1. 관련근거 : 천광교-25-049(2025.4.21.) 프란치스코 교황님 선종 2. 부활 팔일 축제 동안에는 그날의 미사를 거행합니다. 미사 중 감사기도에서 교황 이름을 부르는 부분은 생략하고, 곧바로 “저희 주교 시몬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한 전구를 덧붙입니다(첨부1 참조). 또한 보편지향기도를 바칠 때에도 선종하신 교황님을 위한 특별한 지향을 넣습니다.3.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종하심에 따라, 바티칸에서 우리나라 시각으로 금일 저녁 추기경단 회의를 통해 장례 일정이 결정될 예정입니다. 구체적인 장례 미사 일정과 추모미사 전례문(독서, 보편지향기도 포함), 기도문, 상본은 추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4. 신부님께서는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4월 26일(토) 오전 중에(이 날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날에라도) 각 본당(수도회)에서 추모미사를 거행해주시기 바랍니다.5. 본당(수도회)에 설치할 수 있는 현수막 제작용 파일은 그룹웨어 게시판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현수막은 모두 3종입니다. ‘세로 버전①’-현수막 2종(한 쌍)-은 성전 내부 제대를 중심으로 제대 양옆에 세로로 내리운 형식의 현수막입니다. ‘세로버전②’와 ‘가로 버전’은 성전 내부 또는 외부에 게시 가능한 현수막입니다. 6. 교구 내 공식적인 분향소는 마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첨부 : 1. 감사기도 1-3양식          2. 현수막 파일(3종, 그룹웨어게시판)    끝.

2025-04-22
2025년 청소년 축제

      † 함께 걸어가는 하느님 백성       청소년사목국에서는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청소년 축제를 진행합니다. 지난 ‘2025년 청소년 축제 안내’ 공문(천광교-청소년사목국-25-012)을 통해 공지해 드린 바와 같이, 청소년들이 신학생, 수도자(수녀님, 수사님)들과 함께 모둠활동을 하면서 희망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마련하였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기쁨을 누리는 자리가 되도록 신부님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1. 주     제 : “희망의 순례자들”      2. 주제성구 : “주님께 희망을 둔 이는 지칠 줄 모르고 걸어갑니다.”(이사 40,31)      3. 일     시 : 5월 25일(주일) 09:30 ∼ 16:30 (접수 09:30, 파견미사 15:00, 주례 : 옥현진 대주교님)      4. 장     소 :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일대 (운동장, 파파가든, 박물관, 대성당)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80)      5. 참가신청 : 5월 12일(월)까지 그룹웨어(청소년사목국 김민결)로 신청                              (예비신학생은 신청서 비고란에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6. 문     의 : 청소년사목국 062)380-2270, 2273첨부 된 프로그램 안내 및 신청서를 꼭 자세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첨     부 : 1. 청소년 축제 프로그램 안내                        2. 청소년 축제 참가 신청서   끝.

2025-04-11
2025년 교구 위령회 제1차 기초교육 안내

† 함께 걸어가는 하느님 백성   사목국과 교구 위령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2025년 교구 위령회 제1차 기초교육을 실시합니다. 올해에는 지구 및 권역별로 기초교육 2차례, 심화교육 2차례(기초교육 수료자 대상) 가 진행됩니다. 본 교육을 통해 일치된 전례와 기도가 본당 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신부님들의 관심과 독려 부탁드립니다.   1. 일 시 : 2024년 4월 26일(토) 10:00-16:30 2. 장 소 : 목포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 3. 대 상 : 전남 지구의 본당 위령회 회원 4. 일 정시 간일 정비 고10:00-10:30접 수   10:30-12:30강 의 1, 2안호석 신부12:30-13:30점식식사   13:30-16:30연도 교육 및 창 연습교구 위령회 ※ 추후 일정 - 기초 제2차 : 8월 23일(토) 광주지구 (천주교광주대교구청) - 심화 제1차 : 5월 17일(토)-18일(주일)/1박2일 전남지구 (목포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 - 심화 제2차 : 9월 13일(토)-14일(주일)/1박2일 광주지구 (천주교광주대교구청)   5. 신 청 : 4/15(화)까지, 해당 지구 위령회 대표 ※ 신청순 100명까지 접수합니다(인원 미달시 타지구 접수 가능, 별도 연락).   6. 신청금 : 1인당 15,000원 ※ 위령회 통장계좌 : 농협 355-0061-5574-73 재법.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 본당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입금명: 본당+기초).   7. 문 의 : 교구 위령회장 010-3609-8586, 사목국 062)380-2833   ※ 첨 부 : 2025년 위령회 제1차 기초교육 참가 신청서   끝. 

2025-03-28
CBCK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 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다

보도자료 원문링크1936.12.17.-2025.4.21.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다- 1936년 아르헨티나 출생, 1969년 사제품·1992년 주교품 받아- 199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임명, 2001년 추기경 서임- 2013년 제266대 교황에 선출, 사목 표어는 ‘자비로이 부르시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계승하며 가톨릭의 보편성 실현 노력- 12년 재임 중 47회, 70여 개국 해외 순방, 세계 평화를 위한 실천 독려- 끊임없는 한국 사랑… 2014년 방한, 한국 주교단과 2015·2024년 로마에서 만나- 생애 마지막까지 신자들 가운데에 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 로마 시각 2013년 3월 13일 저녁(로마 현지 시각)에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됐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바로 우리가 추모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1953년)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에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받던 중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했고, 동시에 사제성소를 느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표어인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복음서 기록에 관한 베다 성인의 강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베르골료는 1958년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 수련장과 관구장, 산미겔 철학·신학 대학 학장 겸 산미겔 교구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 주임 신부 등을 역임했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주교품을 받았고, 1998년 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됐으며, 200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2005년부터 6년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내며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밖으로 나가는 교회, 세상을 향한 발걸음2013년 3월 13일, 베르골료 추기경은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 투표)를 통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저의 형제 추기경님들께서 [로마의] 주교를 찾으러 지구의 끝까지 가신 것 같습니다”(선출 직후 첫 강복 메시지)라는 소감처럼, 그레고리오 3세 교황(시리아)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탄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콘클라베를 위해 소집된 추기경 회의에서 그는 ‘밖으로 나가는 교회’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쿠바 출신 동료 추기경이 전한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님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신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은 안에 계시면서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문을 두드리신다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가두고 그분이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게 한다.”(zenit.org, 2013.3.26.) 이는 그가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2013년)에서 말한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한다.그가 선택한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화의 사도이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했다. 성인의 삶을 닮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는 즉위 직후부터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즉위 후 9일 뒤 로마의 한 교도소에서 첫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재소자들의 발을 씻겼다. 2013년 7월 람페두사에서 난민들의 죽음을 환기하며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하던 목소리, 2014년 한국 방문에서 보여준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연민, 2020년 3월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두려워 떠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던 뒷모습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교황은 또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관심을 제도화하여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전례력 연중 제33주일)'과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7월 마지막 주일)'을 제정했다. 복음의 기쁨 전하며 공의회 정신 계승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하 ‘공의회’) 이후 사제품을 받은 첫 교황으로서, 가톨릭의 현대화(아조르나멘토)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공의회 정신의 계승에 심혈을 기울였다. 교황은 2015년 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으로 거행된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 미사에서 교회와 우리 시대 모든 이의 만남, 복음의 기쁨과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선교 열정, 민족과 계층을 초월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비를 실천하자고 권고했다.2022년에는 9년간 준비한 교황청 기구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안을 담은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2022.3.19. 반포, 6.5. 발효)는 개혁의 지향을 공의회의 쇄신 정신,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성, 친교 안에서의 공동 책임, 주교들의 사명에 대한 봉사, 보편성의 표현, 부(富)의 축소 등으로 밝혔다.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유럽인 성직자 중심으로 여겨지던 교황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재위 기간에 걸쳐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라오스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주교들을 추기경으로 발탁했으며,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복음화부 장관 직무 대행, 필리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성직자성 장관, 대한민국) 등 아시아 성직자,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수도회부 장관), 파올로 루피니 박사(홍보부 장관), 막시마노 카바예로 레도 박사(재무원장) 등을 교황청 관료로 등용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4편, 교황 권고 7편을 비롯해 자신이 반포한 공식 문헌들에서 기쁨, 자비, 생태적 회개, 형제애 실천을 강조했다. 아울러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현대의 위험인 고립과 자아도취를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을 모두와 나누며(「복음의 기쁨」),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에 가득 찬 영으로 다른 이들을 비추자고 요청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2015년 자비의 특별 희년에 조명한 착한 사마리아인 정신은 「모든 형제들」(2020년)에서 구체화됐다.교황은 「찬미받으소서」(2015년)를 통해 지구에 대한 인류의 관점을 쓰고 버리는 자원 창고가 아닌 ‘공동의 집’으로 전환시켰고, 창조 질서 수호를 위한 국제적 연대의 사명을 일깨웠다. 그는 정교회가 1989년부터 지내 온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2015년부터 가톨릭 교회 기념일로 지정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는 날로 만들었다.시노달리타스, 곧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에 대한 꿈은 그가 교회에 남긴 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의 어근인 ‘시노드’는 의미상 ‘함께+길’의 합성어이면서 교회 회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황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하며 제정한 세계주교시노드가 지역 교회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힘을 실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집한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는 가정(2015년 제14차), 청년(2018년 제15차) 등 현대 교회와 사회의 관심사를 짚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제16차 정기총회는 2021년부터 햇수로 4년간 이어졌다. 교회 자체를 성찰과 쇄신의 대상으로 삼은 이 정기총회 여정은 풀뿌리 교회 조직인 본당에서부터 교구, 주교회의, 대륙을 거쳐 두 차례 로마 총회(제1회기 2023년 10월, 제2회기 2024년 10월)로 수렴되었고, 폐막 후에도 전 세계에서 ‘이행 단계’(2025-2028년)로 이어지고 있다. 희망과 평화의 사도한국인에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잊지 못할 존재다. 2014년 8월, 재위 2년차 교황은 첫 아시아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AYD) 폐막 미사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는 말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주례하면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시복했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국가 단위의 주교단이 교황에게 지역교회 현황을 직접 알리고 논의하는 ‘사도좌 정기 방문’(Visita ad limina)에서도 교황은 한국을 향한 사랑을 전했다. 2015년 방문 중에는 한국 주교들에게 한국 사회의 현안을 묻는 한편, 현지에서 봉헌된 124위 시복 감사 미사에 부쳐 “평신도에 의해 시작됐고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한국 교회가 안락한 신앙을 버리고 아시아 교회의 빛이 되”기를 당부했다. 2024년에는 “분단된 한국, 고통의 상황이 속히 개선되고 종결되도록 기도”할 것을 약속하며,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교회, 열린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독려했다.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세계 평화를 위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7월 브라질부터 2024년 12월 프랑스까지 47회, 70여 개국을 사목 방문했고, 전쟁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교황 특사를 파견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을 여러 번 선포했다. 교황은 2013년 9월 7일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2018년에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 2020년에는 레바논,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2023년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식을 위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연대를 청했다.평화를 위한 교황의 기도는 병상에서도 계속되었다. 교황은 서면으로 발표한 2025년 2월 23일 주일 삼종기도 연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년을 언급하며,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중동, 미얀마, 수단 등 분쟁 지역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청했다. 병세가 완화된 24일에는 가자 지구의 본당신부에게 전화로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2025년 3월 23일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교황은 생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의 양 떼인 신자들과 함께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이었지만, 교황은 퇴원하던 날에도, 4월 6일 병자와 의료 종사자를 위한 희년 행사 현장에도, 성주간의 첫날인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도, 17일부터 이어진 파스카 성삼일과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즉위 직후 2013년 3월 28일(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때 사제들에게 권고한 대로, 교황은 끝까지 주님의 양(羊=신자)들 가운데에 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였다.2025년 가톨릭 교회의 정기 희년(25년 주기)을 선포하며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세계인의 가슴에 새기고, 희년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최근에 발행된 자서전 「희망」(Spera)에서 그가 사목 방문 때마다 찾아가 기도했던 로마 성모 대성전(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Maggiore)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50178?gb=K1300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2025-04-22
교구 옥현진 대주교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은 큰 은총''...광주대교구, 17일 성유축성미사 봉헌

기사원문링크(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리원 기자 = 천주교광주대교구는 오늘(17일)오전 10시 30분 임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가 주례한 가운데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했습니다.이날 미사는 전임 교구장인 윤공희 대주교와 최창무 대주교, 김희중 대주교가 공동으로 집전했으며 사제와 수도자, 신자 등 800여명이 참례했습니다.이날 미사에서 옥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3년 전 축성미사 강론을 언급하며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은 큰 은총"이라며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안에 유혹을 식별하며 우상을 거부하기 위해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이어, "이 은총은 우리 자신을 위한 은총이라기보다 백성을 위한 은총이기에 사제인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또, 옥 대주교는 "성취감이나 열정, 그리고 자기 만족에 취해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악마에게 내어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보여주기식 문화'는 영적 세속성으로 이끌고 십자가 없는 영광에 대한 유혹과 인간이 되신 주님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특히, 옥 대주교는 "가난하게 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 뒤, "세속적인 사제는 성직 지상주의로 물든 이교도(異敎徒)와 다를 바 없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한편, 이날 거행한 성유축성미사에서 옥 대주교는 '사제들의 서약갱신'에 이어 사제들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축성성유'와 '병자성유', '예비신자 성유'를 축성했습니다. 이들 성유는 앞으로 1년 동안 각 본당에서 세례·견진·병자·성품 성사를 주례할때 사용됩니다.미사 중에는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은 전임 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해 고재영 신부와 이성규 신부의 금경축 축하식도 열렸습니다. 축하식에서는 50년 사제 생활을 돌아보는 영상을 시청한 뒤 교구 여성위원회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신자들을 대표해 꽃바구니와 예물을, 김영권 총대리신부는 사제들의 마음을 담은 축하 예물을, 그리고 옥현진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내 온 축복장을 각각 전달했습니다.김희중 대주교는 감사 인사에서 "사제로서 주교로서 충실히 살아올 수 있도록 함께해 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50년은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는데 80세를 앞둔 지금 참된 목자로서 지천명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했습니다.그러면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하나의 아름다운 꽃으로 봉헌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고재영 신부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조금 더 베풀 걸, 더 함께할 걸’이라는 후회”라며 “남은 삶은 그런 아쉬움을 덜어가며, 덜 부끄럽게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성규 신부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도 행복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도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며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날들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편, 이날 성유축성미사에 참례한 박오단(아녜스·신안인덕성당)씨는 "신부님들께서 늘 묵묵히 사목해 오신 걸 알기에 오늘 미사에 함께하고 싶었다“며 ”그동안 신부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많았기에 직접 와서 함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습니다.<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5-04-18
교구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믿음과 사랑의 땅으로 나아가야''...'2025년 주님부활대축일 메시지' 발표

기사원문링크(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소언 기자 = 천주교광주대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는 오는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발표한 '2025년 부활메시지'에서 "불신과 의혹의 바다를 건너 믿음과 사랑의 땅으로 나아가자"고 당부했습니다.옥 대주교는 "어둠 속의 기나긴 밤을 이겨내고 새날을 맞이한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이어, "지난 몇 달 동안 이 땅의 의식 있는 다수의 국민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며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잔인한 사월’이 지나면 대한국민의 마음에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나 새롭게 부활하리라 믿는다"고 덧붙였습니다.옥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정한 역사가 있으려면 기억을 해야 하고 과거가 부끄럽더라도 이미 지나온 길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역사를 망각한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선택들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특히, "힘겹게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탑을 다시 쌓아 올리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이 그저 쉽게 얻어졌던 게 아니었음을 절감하는 오늘"이라고 말했습니다.무엇보다 옥 대주교는 일부 정치인들이 법을 자신의 보호수단으로 일삼는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옥 대주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 시대나 오늘이나 법을 잘 안다는 사람 중에 일부는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한다"며 "지도자들이 깊은 성찰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법을 악용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큰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우리는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그러면서 "오직 나라를 걱정하는 한마음으로 서로 격려하고 구호를 외치는 평화로운 시위를 보면서 역사는 늘 기득권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들의 희생으로 이뤄짐을 다시한번 느낀다"며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또, 옥 대주교는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의 희생처럼 이 나라의 아픔을 기꺼이 짊어지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모여 내일의 희망이 만들어지는 것임을 절감한다"며 "이 분들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해주는 ‘부활의 산 증인’"이라고 덧붙였습니다.끝으로 옥 대주교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희망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마침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며 "그러기에 주님 부활을 믿는 우리는 근심과 두려움의 바다에서 희망과 용기의 땅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한편, 옥 대주교는 오는 19일 오후 8시 임동주교좌성당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를 주례할 예정입니다.<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5-04-15
기타 착한 목자 두봉 주교, 사랑으로 한국 교회를 돌본 71년 여정 마치다

기사원문링크“사제로 산 70년 동안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길 때 하느님께 칭찬받을 일은 ‘사제가 된 것’입니다.”(2023년 7월 24일 사제수품 70주년 감사 미사 중) 예수님에게 반해 사제가 돼 71년 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국인을 행복과 사랑으로 안내한 목자.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레나도 주교가 4월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좌우명 ‘기쁘고 떳떳하게’를 실천하며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자 아버지로 헌신한, 그야말로 ‘착한 목자’의 본보기가 되는 삶이었다. 프랑스 태생인 두봉 주교의 본명은 르네 마리 알베르 뒤퐁. 그는 1929년 9월 2일 파리 인근 오를레앙교구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교구 대신학교를 졸업한 뒤퐁은 19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1953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19일 프랑스를 떠난 지 두 달 반 만에 마침내 선교지에 도착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었다. 뒤퐁 신부는 ‘뼈를 묻을 각오’를 했다. 그 뒤로 몇 달을 서울 파리외방전교회 거처에 머물던 뒤퐁 신부. 1955년 드디어 대전교구 대흥동본당(현 주교좌) 보좌로 사목을 시작했다.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고 오기선(1907~1990) 신부를 도와 10년 동안 신나게, 열정적으로 사목했다. 한국식 이름인 ‘두봉(杜峰)’도 이때 오 신부가 지어준 것이었다. 그렇게 프랑스인 뒤퐁은 한국인 두봉으로 이 땅에서 70년을 살게 됐다.  두봉 신부는 1962년 대전교구 상서국장과 1967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을 지냈다. 그러다 1969년 5월 29일 대구대교구가 관할하던 경북 북부 지역이 새로운 교구로 분리 설정됐다. 바로 안동교구였다. 그리고 첫 교구장으로 두봉 신부가 임명됐다. 1969년 7월 25일 주교품을 받은 그는 21년간 목자로 헌신하며 교구 기틀을 다졌다. ‘농촌 교구’인만큼 가톨릭농민회를 설립하는 등 지역 발전과 농민 인권 신장에 힘썼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발생한 ‘안동 가톨릭농민회 사건’,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었다. 영양군청이 불량 씨감자를 보급한 데 항의하던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청기분회장 오원춘이 수사기관에 의해 납치, 고문당한 일이다. 두봉 주교는 이 사건을 폭로하고, 유신 정권에 항의하다 추방됐다. 그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개입했고,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추방을 취소하면서 두봉 주교는 2달 만에 복귀했다. 두봉 주교는 또 상지여자전문학교(현 가톨릭상지대학교)와 상지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여성의 교육 기회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아울러 한센병 환자를 위한 병원과 신체장애인 직업훈련원을 건립하는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업도 펼쳤다. 또 신자와 지역민을 위해 안동문화회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이처럼 두봉 주교의 70년 한국살이는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낙후된 경북 안동에서 농민 사목을 하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등 많은 격랑을 온몸으로 맞아왔지만, 언제나 사회적 약자 편에 섰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우명인 ‘기쁘고 떳떳하게’를 실천했다. 1990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두봉 주교는 경기 고양시 행주공소에서 지냈다. 그리고 2004년 경북으로 돌아와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에 터를 잡았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시라”는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요청이었다. 두봉 주교는 집앞 텃밭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손님들을 반갑게 환대하는 소탈한 삶을 살았다. 두봉 주교는 2019년 지역 사회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앞서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과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백남인권봉사상·만해실천대상을 받기도 했다. 집 앞 텃밭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소탈하게 살던 두봉 주교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시청자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선사했다. 아울러 안동 MBC는 2024년 창사 54주년 특집으로 두봉 주교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국인 두봉 주교(연출 이정희)’를 제작하기도 했다. 약 50분 분량으로, 좌우명인 ‘기쁘고 떳떳하게’를 실천하며 가난한 삶으로 관한 두봉 주교의 일상과 유언장이 최초로 공개됐다. “두봉 주교님은 70년 사제생활 가운데 54년을 안동의 어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특별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교님 같은 사제의 본보기인 큰 어른을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저 또한 힘들고 지치고 주저앉고 싶을 때 주교님의 모습에서 다시 힘을 받고 일어섭니다.”  2023년 7월 24일 안동교구 의성성당에서 봉헌된 두봉 주교의 사제수품 70주년 감사 미사. 축사를 맡은 권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주교님이 하신 말씀 중에 ‘나는 사제가 다 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사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항상 마음에 와 닿는다”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제의 여정은 평생을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있다”고 전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두봉 주교 약력> 1929년 9월 2일    출생1947년 4월 20일    프랑스 오를레앙 시 생크로아 고등학교 졸업1949년 6월    오를레앙 대신학교 철학과 졸업1950년    파리외방전교회 입회1951년 6월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신학과 졸업1953년 6월 29일    사제 수품1954년 6월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졸업1954년 12월 19일 - 1955년 5월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1955년 5월 - 1965년 5월    대전교구 대흥동 성당 보좌 신부1965년 5월 - 1967년 8월    대전교구청 상서국장1967년 9월 - 1969년 6월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1969년 5월 29일    제1대 안동교구장 임명1969년 7월 25일    주교 수품1970년 10월 - 1984년 11월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1981년 10월 - 1984년 11월    주교회의 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1982년 6월 7일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 수상1984년 11월 - 1990년    주교회의 사목주교위원회 위원1985년 10월 - 1990년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위원1987년 11월 - 1990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1990년 10월 6일    안동교구장 퇴임

2025-04-11
교구 생생 교구속으로-“사진으로 기억을 걷다”...세월호 참사 11주기 사진전 '잊지 않겠습니다' 현장 취재

기사원문링크▣ 프로그램명: '향기로운 오후, 주님과 함께'▣ 방송시간: 4월 8일(화), 오후 2시03분∼2시20분▣ 방송제작: 조미영 PD, 진행: 정은서 아나운서▣ 주제: 생생 교구속으로-“사진으로 기억을 걷다”...세월호 참사 11주기 사진전 ‘잊지 않겠습니다’ 현장 취재진행자: 저는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앞두고 김정용 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현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 작가님 만나볼게요. 작가님 안녕하세요.김정용 작가: 안녕하세요. 세월호 사진을 11년간 올해까지 11년간 기록해서 전시하고 있는 김정용 사진가입니다. 이번 전시는 제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11년을 기록한 작품이고요. 쭉 보시면 가족분들이나 시민들이 10년 동안 세월호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를 위해서 너무 애쓰시고 힘드셔서 지금은 가족들이 좀 10년이 됐으니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좀 위안이 되는 사진을 좀 선별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이 조금 무거운 사진보다는 조금은 가벼운 사진으로 골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진행자: 그럼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세월호 참사의 흔적을 기록해 오게 되셨나요?김정용 작가: 제 직업하고 관계가 있는데 제가 작년까지 서울교통공사 전동차를 정비하는 정비사였어요. 전동차, 배, 항공기 같은 대형 운송선에는 내구연한이라는 게 있는데, 몇 년을 사용을 하면 없애야 된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근데 2012년~2013년도에 갑자기 법 개정을 해서 더 오래 사용하게끔 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그때 저희 회사 노동조합과 싸움을 했는데 이기질 못했어요. 근데 그러고 난 뒤 2014년도에 세월호가 터졌단 말이죠. 그런데 세월호 참사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팩트는 세월호는 일본에서 18년을 운영한 배였다. 배는 또 선박 연령이라는 게 있다는 거죠. 일본은 폐기한 거를 우리가 지금 갖다가 고쳐서 하게 된 거고 내구연한이 연장이 안 됐다고 하면 세월호 참사가 안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 그런 부분에 제가 어떻게 보면 애들에 대한 먼저 산 사람으로서 책무 이런 게 좀 느껴졌어요. 그래서 꼭 기록해서 이런 부분을 사람들한테 좀 알리고 싶다 이런 생각이 좀 있었습니다. 기록해오다보면 아프죠. 사실 가족들이 너무 아파하시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가족분들의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거꾸로 이런 기록을 남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남겨서 저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줘야만 다시는 안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런 부분이 가족 분들하고도 양해가 돼서 사진 촬영하기까지 너무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진행자: 이번 전시회에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는지 또 함께 둘러보면서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김정용 작가: 지금 입구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보시면 10점이 있는데 이거는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에서 최고 가까운 섬인 동거차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세월호가 인양하는 과정까지 가족들이 감시 초소를 설치하고 이제 한 3년간을 오고 가면서 거기서 기숙을 하셨거든요. 그 관련된 동거차도 사진을 한 10점을 쭉 정리해 놓은 겁니다. 2017년도에 3월에 세월호가 인양하고 나서 동거차도에 가면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이제 다 철수하고 능선만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23년도에 김영만 활동가라는 분이 가족들이 그 숙소가 없어가지고 동거차도에 머무를 돔도 만들어 주셨던 분인데 21년도에 여기에다가 기념비를 만드셨대요. 제목은 ‘기다림의 기념비’고요. 기념비 네 귀퉁이에는 어머니 상 네 분의 상이 있습니다. 한쪽이 조금 열려 있는데, 이게 예전에 이제 자식들이 아버지한테 혼나거나 그러면 못 들어올 때 어머니들이 이제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 같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애들한테 엄마한테 좀 지금은 들어왔으면 좋겠다 하는 기원을 담아 만들어놓은 기념비라고 합니다. 그 기념비가 이거의 3분의 1로 축소된 게 이겁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저희가 이제 아이들을 별이 된 아이들이라고 많이 표현하잖아요. 저는 이 동거차도를 1년에 한 번씩을 최소한 방문하는데 은하수가 지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갔는데 11시 반까지 비가 억수하게 쏟아졌어요. 그래서 “아 오늘 별을 못 찍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12시가 넘으면서 날이 개면서 올라갔더니 이렇게 밝은 별들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기다림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애들이 기념비에 있는 어머니 상하고 만나는 그런 걸 좀 표현 한 작품입니다.진행자: 작가님 그럼 이번 전시 언제까지 만나볼 수 있는지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김정용 작가: 4월 1일부터 시작을 했고요. 16일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11년째 되는 당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그리고 전시 시간은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이렇게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되시면 많이들 오셔서 좀 봐주시고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조금 더 상기해 주셨으면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진행자: 이번에는 오늘 전시에 함께하고 있는 관람객 분들도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다시본당 주재분(데레사): 저는 다시본당 주재분 데레사입니다. 책방에 왔다가 지나가다가 들렀어요. 보니까 그때가 다 생생하니 생각이 나네요. 얼마나 많은 그 엄마들 아버지들 말로는 다 못하지요. 그런데 그냥 그냥 그렇게 지나간 것 같아요. 묻혀진 것 같아요. 이제 세월이 가면서 잊혀지는 것 같아요. 기억을 잊지 말아야지요. 저희들도 지나가다 보니까 이렇게 또 옛날 그때 다 새롭게 생각이 다 나네요. 많이 오셔서 보셨으면 좋겠어요.중흥동본당 강애리(율리따): 광주대교구 중흥동 성당 강애리 율리따입니다. 가장 가까운 섬에서 그 돔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지내시면서 바라봤을 그분들의 마음이 너무 마음이 무너지네요. 가슴이 아프고 우리가 그분들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거든요. 전 국민이 다 잊지 않고 있고 이렇게 잊지 않고 있는 것이 그 부모님들이 살아가는 원동력 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게 바로 숨 쉴 수 틈이고 창구임을 11년 동안 느끼면서 같이 해온 우리들도 조금은 알겠거든요. 그래서 오늘 같은 전시나 연극 같은 걸음걸음들로 계속 표현해 주신다면 저희도 멀리에서 계속 응원하고 박수하며 함께 기억하며 걷는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나주본당 박순자(수산나): 나주본당 박수산나입니다. 해결이 안 돼서 안타까워요.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부모님들이 가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그때 저도 목포에 갔었어요. 가서 울었죠. 근데 지금 다시 이렇게 보니까 마음이 다시 아프네요. 부모님들의 그 안타까움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다른 어머니들도 많이 오셔서 구경하시고 또다시 우리가 세월호의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빨리 해결될 수 있게 우리가 많이 기도하고 이런 전시도 구경하고 동참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전상범: 안녕하세요. 저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는 전상범이라고 합니다. 일단 세월호가 10년이 넘었고 지금 이제 11주년이긴 하지만 사람들 기억 속에 많이 잊혀져 있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매년 세월호 참사 때부터 지금까지 관심을 갖고 이 추모도 하고 그러면서 세월호 11주기 관련해서 검색을 하다 보니까 광주에 이런 게 있더라고요. 저는 광주 시민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까 사진전을 보고 싶어서 시간을 내서 오게 됐어요. 살다 보니까 삶에서 세월호라는 거를 잊고 살았던 제 자신이 조금 많이 반성을 하게 되고요 앞으로 이러한 대형 참사들이 좀 없었으면 하는 그런 가장 큰 바람이 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라든지 뭐 정치인분들을 통해서 관련 내용들이 많이 좀 개선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갈 것 같아요.유선옥: 4월 되면 늘 기억이 나거든요. 이날이 저희 아이들이 체험 학습을 간 날이었어요. 근데 저희 아이들이 버스에서 이걸 장면을 봤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 아이들이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어요. 근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뭔가 변화가 되지 않았다는 게 좀 슬프네요. 사진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거죠. 이걸 보면서 저희가 기억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 사진이라는 게 누군가한테는 기억되는 거죠. 그래서 잊지 않게 되는 이런 결과물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어서 기억하는 거죠.진행자: 이번 전시는 4월 16일까지 이어지는데요.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갤러리 현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사진전 ‘잊지 않겠습니다’ 소식 전해드렸습니다.<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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