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공지
광주가톨릭박물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시 개막예식 말씀(옥현진 교구장 말씀에서 발췌)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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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주가톨릭박물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시 개막예식 말씀
(옥현진 교구장 말씀에서 발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진정한 역사가 있으려면 기억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가 부끄럽더라도 이미 지나온 길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를 지우고 잘라내 버리면, 우리는 기억을 잃게 됩니다. 기억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극소수의 해법 중 하나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기억하는 사람이고,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사람입니다.” (LET US DREAM,)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 안에서 천주교의 역할에 대해 타 종교와 비교하면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사실 식민지배를 정당하다고 생각해 왔던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지도를 받아온 한국 천주교회는 소극적인 자세로 독립운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안중근 의사도 토마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하얼빈 사건 당시 조선 천주교회는 알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에 천주교가 관여되어 있다고 알려지면 박해를 받게 될까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안중근에게 고백성사를 준 사제로 알려진 빌렘 신부도 한때 안중근과 다툰 적이 있습니다. 조선인 신자들을 무시하고 억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에 대해 안중근이 부당하다고 지적하자 그는 화가 나서 안중근의 뺨을 때렸습니다. 안중근은 물러서지 않고 사례를 제시하며 반박하자 빌렘 신부는 화를 풀고 자신의 행동을 사과합니다. 안중근은 항일 투쟁 중 대한 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역할을 하다 전투에 승리하여 일본군들을 생포합니다. 동료들은 일본군을 가둘 감옥도 없기에 처형하자고 했지만, 안중근은 포로는 국제법에 따르면 죽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들을 풀어주어 심한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일본군이 나중에 다시 안중근 부대를 습격해 오자 안중근을 따르던 부대원들은 흩어지고 소수의 전투원으로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종부성사를 청하는 안중근을 위해 여순 감옥으로 가고자 한 본당신부 빌렘은 교구장 뮈텔의 반대 때문에 빨리 출발하지 못하고 사형이 임박해서 결단을 내리고 여순으로 향합니다. 나중에 빌렘 신부는 교구장 명을 어겼다고 참사회에 불려와 성무정직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중근의 의거 이후 뮈텔 주교는 더욱 친일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105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안명근 야고보를 밀고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신사참배 문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바티칸의 훈령에 의거하여 저항없이 참배하게 됩니다. 이는 일본 천주교회에서의 군국주의자들의 교회에 대한 박해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군부의 통치에 반대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면 어렵게 형성되어온 한국 천주교회에 닥쳐올 새로운 박해를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일본 교황대사의 신사참배에 대한 의견은 단지 애국심에 의한 행위라고 바티칸에 보고하였고 그 내용 그대로 신사참배 허용 훈령이 나온 것입니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님은 84년만에 안중근 의거의 정당성을 미사 중에 언급하셨습니다.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일제의 무력 침략 앞에 민족의 존엄과 국권을 지키기 위해 행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와 의거로 보아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도 알아야 제대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한국 독립운동과 천주교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마련하는데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연구와 보완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천주교의 사료 정리가 발전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