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전체메뉴 보기
메뉴 보기

교회소식

교구한 번만 더-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2-02-17
  • 조회수 :  701
오래전 ‘시간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삶의 모습과 빠르기의 문제 그리고 장소와 문화에 따라 시간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삶의 중요성을 어디에 두고 있으며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좋은 책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마주한 사람들의 지향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에 처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행복인지 불행인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 시간을 행복과 불행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결국 행복한 시간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 선택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하다. 곧 불행은 다른 것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가오는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코로나 시대 이후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던 일상들이 변해 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습성을 반성하고 변화를 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뒤쳐지거나 도태되는 느낌마저 든다. 살아왔던 삶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무한 경쟁의 삶을 살도록 교육받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먹방’을 시청했는데 맛깔스런 음식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음식과 음료가 실낱 같은 희망처럼 간절할 때가 있다.
나를 위한 열정적인 삶을 살거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 있다. 그러나 그 열정이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고 보다 나은 삶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라면, 멋지고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고 자신의 삶조차 망가뜨릴 수 있다.

내 책상 한 쪽에 사진이 하나 있다. 이 사진은 케빈 카터(Kevin Carter)가 1993년에 찍은 것으로 세계가 아프리카 수단을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그마한 소녀는 고개를 땅에 떨군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굶주림에 야위어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난 왜소한 몸으로 힘겨워 보였다. 그 뒤에 대머리 독수리 한 마리가 시선을 고정한 채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 빈곤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보도 윤리 등의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죽어가는 소녀가 독수리의 먹잇감이 될 위급한 상황에도 카터는 사진을 찍는 데만 몰두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카터는 서른셋의 나이에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고 한다. 카터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었을까?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이라는 문헌을 통해 세상에 던졌던 메시지를 상기하고 싶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불평등한 경제시스템에 ‘노’(NO)라고 해야 한다. 집 없는 늙은 노숙인이 죽는 것은 뉴스가 안 되고,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어떻게 뉴스가 될 수 있는가?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도 음식이 버려지는 상황을 계속 방관하고 있을 수 있나? 이것이 배척이고 불평등이다.”

탐욕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삶의 원동력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삶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서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내 삶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예수가 루카복음 16장 13절에서 말씀하신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 더 깊게 다가온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 한 번만 더 사람을 생각해 보고, 들여다 보고, 집중해 보자. 밑바닥이라고 느껴지는 곳에 사람이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곳에 또한 사람이 있다. 고통 속에 짓눌린 곳에 사람이 있다. 우리와 이들이 느끼는 시간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들여다 보고, 집중하면 보인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지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