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1. 윤공희 대주교(2)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2-03-31
- 조회수 : 661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제의 삶, 후회한 적 없어
서포에 있는 예비신학생 기숙사에 살며
평양 시내 성모보통학교 통학하며 공부
음악 활동도 열심했던 덕원신학교 시절
대림 시기에 부르던 성가 아직도 선명해
■ 사제성소를 싹틔우다
왜 사제가 되고 싶었을까.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 했을까. 난 사실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참 단순한 이유였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선생님들과 수녀님들께선 내가 초등학교 3~4학년에 올라갈 즈음부터 ‘신학교를 갔다 나온 네 맏형을 대신해 네가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주셨다.
나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진남포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운영한 기관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인 해성학교라는 초등학교를 나왔다. 신자들과 수녀님들이 선생님으로 계셨고, 수녀회 원장수녀님도 내가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는 분이셨다.
어른들의 권유와 해성학교의 신앙적인 분위기 속에서 ‘내가 신부가 되는 것이 당연한가 보다, 사제의 길이 좋은가 보다’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리고 예비신학생으로, 서포에 있는 예비신학생 기숙사에 들어갔다. 초가집 두 채로 만든 기숙사였다. 당시 평양교구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 중에서 예비신학생을 모집하여 서포로 보냈다. 서포는 평양에서 한 20리가량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인데, 거기에 평양교구청(메리놀 외방 전교회 한국지부)과 서포본당이 있었다. 메리놀회 소속으로 서포본당 주임을 맡고 계시던 노요셉 신부님이 예비 신학생 지도 신부를 겸하고 계셨다.
예비신학생들은 기차로 한 정거장 남쪽에 있는 평양 시내 성모보통학교에 통학하며 공부했다. 6학년 공부가 끝나면 서울 동성신학교나 덕원신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학년 중에는 11명이 예비신학교에 입학했는데, 그중 네 명(이종순, 나, 장대익, 김진하)만이 신부가 됐다.
내가 사제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신부를 안 했으면 귀여운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를 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사제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매일매일이 그저 좋았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여기저기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