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1. 윤공희 대주교(5)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2-04-20
- 조회수 : 635
교회 쇄신 향한 변화의 바람 한가운데 서다
1962년 시작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수행원 역할로 참석한 첫 회기에 이어
수원교구장으로서 두 번째 공의회 참석
당시 가톨릭시보 통해 공의회 소식 전해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첫 회기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첫 회기에 참석하게 된 것은 참 운이 좋은 일이었다. 이후에는 지원 제도가 없어졌지만, 당시엔 전교 지방의 주교들이 각자 비서를 2명까지 공의회에 동반할 수 있었고, 그 비용도 교황청에서 다 지원해 줬다.
한국주교단은 특별히 외국에 가본 경험이 없는 신부를 택해서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려는 분위기를 보였다. 그때 나는 로마 유학을 다녀와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협의회 총재 주교님은 메리놀회 출신인 청주교구장 파 주교님(James V. Pardy)이었다. 파 주교님께선 누구를 데려갈까 고민하시다가 메리놀회가 북한 평양교구에서 활동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평신도 사무장 로마노씨와 나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공의회 첫 회기 일정 중에는 주교님들 외에 수행원들이 옵서버로 공의회에 참석할 시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회기 내내 파 주교님 혼자 오전엔 공의회에 참석하시고, 오후엔 내가 모시고 로마 시내로 나가는 일정이 이어졌다. 내가 로마 유학 경험이 있었던 터라 로마 안내를 맡게 된 것이었다.
첫 회기 동안 13개의 의안을 토의했지만 회기가 끝날 때까지 준비와 토론만 이어지고 결정된 내용은 적었다. 그런데 전례에 대한 안건, 그것 하나만은 의결이 됐다. 이를 통해 미사를 비롯한 전례 시간에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특별히 강조했던 것은 평신도의 역할이었다. 이때 교회 내에서 펼칠 평신도 역할에 대해 논의했던 내용은 추후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만들어지는 기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