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교구〈생생, 교구 속으로〉 “장애인들의 벗으로 45년”…‘천노엘 신부 선종 1주기’ 추모미사 봉헌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6-06-09
- 조회수 : 69
1981년 한국 최초로 지적장애인을 위한 ‘그룹홈’ 도입
보좌신부 시절 신자부터 장애인 공동체까지 추모 발길
▣ 프로그램명: '향기로운 오후, 주님과 함께'
▣ 방송시간: 6월 9일(화), 오후 2시 03분∼2시 18분
▣ 방송제작: 조미영 PD, 진행: 김가경 아나운서
▣ 주제: 생생, 교구 속으로-'천노엘 신부 1주기 추모미사' 취재
진행자: 저는 지금 담양에 있는 천주교 담양공원묘원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천노엘 신부님 선종 1주기 추모 미사가 이곳에서 진행되는데요. 한국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그의 삶을 기리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을 찾은 신자분들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서산동본당 임정란(로사): 안녕하세요. 서산동본당 임정란 로사입니다. 저희 아이가 발달 장애인이다 보니 천노엘 신부님이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아서 1주기 추모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진행자: 어머님께서 기억하시는 천노엘 신부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서산동본당 임정란(로사): 사랑 그 자체이시죠. 예수님의 사랑처럼 우리 발달장애인들에게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이십니다.
진행자: 이 자리를 빌려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서산동본당 임정란(로사): 천노엘 신부님께서 발달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을 사랑하시는 그 마음이 어찌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잊힐 수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우면서 두렵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 특히 저희 아이같이 장애가 있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베푸셨기 때문에, 그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 실천해 주신 천노엘 신부님의 사랑 철학을 이어받아서 남은 후배들이나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 자녀들과 발달장애인들을 위해서 더 깊은 사랑과 장애인들의 발전을 위해 사회가 좀 더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운남동본당 한병순(로사): 운남동본당 한병순 로사입니다. 제가 70년도에 신부님을 만나 그때 세례를 받았는데, 당시에는 (세례받을 수 있는 곳이) 북동성당밖에 없었어요. 그때 신부님이 광주에 차도 없고 오토바이만 두 대 있다고 그러셨어요. 진짜 두 신부님께서 북동성당에서 그렇게 (고생)하셨어요.
진행자: 신부님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운남동본당 한병순(로사): 그렇죠. 80년도에는 성당도 적고 사제도 없을 때인데, 엠마우스 복지관을 그때부터 만드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장애인들한테 잘하라고… 그렇게 하고 돌아가셔서 지금도 너무 보고 싶고 그래요.
진행자: 이번 추모 미사를 준비한 직원분들도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 엠마우스산업 원장 문성극(바오로): 안녕하세요. 저는 문성극 바오로입니다. 천노엘 신부님과는 약 40년 정도 신부님께서 하시는 사업과 관련해서 함께해 왔습니다. 신부님이 본국으로 마지막 휴가 가실 때 제가 인천공항까지 모셔드렸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했는데 돌아가신 이후에 뵀어요. 그리고 유해를 조카분이 모시고 왔을 때도 인천공항에 가서 함께 모시고 오고, 각별하게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하신 부분이 저에게는 인생의 방향이자 지침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이 사업에 동참한 것 자체만으로도 보람된 일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진행자: 말씀하신 것처럼 ‘장애인들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장애인 인권을 위해 힘쓰셨는데, 관련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전 엠마우스산업 원장 문성극(바오로): 우리 천노엘 신부님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갖고 계셨어요. 어렸을 때 교육받아야 한다고 해서 어린이집을 개설하셨고요. 그룹홈, 자기네들이 살 수 있는 그룹홈을 각 지역에 설립하셨습니다. 그곳에서 3~4명이 생활하면서 그분들이 완전한 인격체로 존중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그룹홈. 어렸을 때부터 이 사회 안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그런 사업들을 했다는 것이죠.
진행자: 원장님께서 기억하시는 신부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전 엠마우스산업 원장 문성극(바오로): 신부님은 굉장히 자상하셨다고 봐야 할까요? 우리 발달장애인 친구들에게도 그렇지만, 일반 우리 직원들에게도 꽤 세심한 배려가 있으셨어요. 아이가 있는 직원들 집에는 꼭 어린이날 금일봉을 챙겨서 준다든가 우리 이용인들 기념일, 생일을 꼭 챙기셨습니다.
진행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같았던 고 천노엘 신부님께 이 자리를 빌려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전 엠마우스산업 원장 문성극(바오로): 저는 가끔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신부님께서 이 사업을 지켜보실 것이고, 또 우리는 계속 이어가야 하는 측면에서 “신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국에서 편안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그런 강구를 합니다.
윤근일(요셉) 신부님: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를 맡고 있는 윤근일 요셉 신부입니다.
진행자: 이번 선종 1주기 추모 미사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에서 준비하셨는데, 벌써 신부님을 떠나보낸 지 1년이 됐습니다. 지금 어떤 마음이실까요?
윤근일(요셉) 신부님: 신부님은 떠나셨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계심이 신부님을 그리워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 안에 그대로 표현되고 있고 제 마음 또한 그렇습니다.
진행자: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고 천노엘 신부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한국에서 펼치신 사목 여정을 들려주시겠어요?
윤근일(요셉) 신부님: 신부님은 참 사제로 사셨던 분이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가난하고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던, 낮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었던 사제의 모습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시고 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오신 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진행자: 마지막으로 무지개 공동체 구성원분들은 신부님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윤근일(요셉)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우리 가족들을 ‘식구’라는 표현으로 늘 부르셨어요.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 그리고 우리 법인의 주인공인 발달장애인들에게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이고 가족으로서 우리를 대해주셨던, 사랑을 나누셨던 그런 분이셨고 그런 모습을 여전히 모든 이가 다 함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어서 윤근일 신부님 주례로 봉헌된 천노엘 신부 선종 1주기 추모 미사 현장으로 가보시죠.

▶현장음(미사, 평전 봉헌식, 추모사, 추모송)
진행자: 이곳에는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았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도 참석하셨는데요, 뵙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청취자분들에게 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제라딘 수녀님: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제라딘 수녀입니다.
진행자: 수녀님께서는 언제 한국에 오셨나요?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제라딘 수녀님: 저는 1975년에 왔어요. 51년째예요.
진행자: 광주대교구 발전에 성골롬반회가 큰 영향을 줬는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제라딘 수녀님: 현재 저는 발달장애인들을 위해서 사회복지법인 설립해 놓고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고 천노엘 신부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제라딘 수녀님: 천 신부님 같은 도시, 고향이고 인간 중심 분이셨어요. 특히 약한 사람들한테 마음 항상 가 계세요.
진행자: 신부님의 뜻을 이어가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제라딘 수녀님: 우리 사회 안에서 장애인분들, 우리 한 인간처럼 함께 해 주면 좋겠어요.

최송아: 엠마우스에 잘 다니고 있는 최송아입니다. 신부님하고 같이 다닌 지 오래됐거든요. 같이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 아일랜드에서 돌아가셔서 미사 하게 됐어요.
진행자: 신부님께서 엠마우스복지관을 설립하셨잖아요. 거기서 어떤 도움을 받으셨을까요?
최송아: 신부님 그냥 우리 잘해주시고 칭찬도 해 주시고.
진행자: 신부님께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최송아: 신부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러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셔서 막 눈물이 나려고 그래요.
용봉동본당 임봉예(멜라니아): 안녕하세요. 저는 임봉예 멜라니아입니다. 용봉동성당 다니고 있고요.
진행자: 엠마우스복지관에서 봉사자로도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늘 이 자리는 어떻게 오게 되셨을까요?
용봉동본당 임봉예(멜라니아): 천노엘 신부님이 신부님이시지만 저희 오라버니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2008년도에 큰아들을 보내고 칩거 생활을 한 1년을 했어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급성으로 병이 와서 2009년부터 제가 스스로 못 걸어 다니는데, 계속 가라고 해서 가서 봉사하는데 그곳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씨가 곱고 착한지 제가 위로를 해주러 간 게 아니라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현재까지 이렇게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 당시 신부님과 특별한 추억도 있으실까요?
용봉동본당 임봉예(멜라니아): 추억도 있습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할 때, 저하고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돼도 오라버니같이, 아버지같이 제 등을 토닥거려 주시면서 위로해 주시고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정말 누구도 저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는데, 그분 우리 천노엘 신부님 정말 정말 그립고 보고 싶고 그냥 가슴이 찡하니 아픕니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우리 신부님.
용봉동본당 나경숙(가타리나): 용봉동본당 나경숙 가타리나입니다.
진행자: 이 자리는 오늘 어떻게 참석하게 되셨을까요?
용봉동본당 나경숙(가타리나): 제가 대학생 시절 농성동 성당을 다녔는데, 그때 천노엘 신부님께서 주임 신부님이셨어요. 그리고 그때 방구동이라고 하는 곳에 장애인들을 위한 숙소를 마련하시고 도움을 주셨는데 제가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거기 가서 봉사를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늘 존경하는 신부님이셔서 제가 오늘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진행자: 오늘 추모 미사를 드리면서 마음은 좀 어떠셨어요?
용봉동본당 나경숙(가타리나): 신부님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면서 제가 용봉동에 살고 있는데, 그 공원에서 신부님이 선포하시는 모습이나 엠마우스복지관에서 가끔 뵐 때의 모습이 그대로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너무 좋았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진행자: 천노엘 신부님께서 남기고 가신 뜻을 우리는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요?
용봉동본당 나경숙(가타리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편견 없이 따뜻하게 안아주고 품어주고.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서 한데 어우러져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거리낌 없이, 경계 없는 마음을 갖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 저를 “가타리나~!”하고 불러주셨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진행자: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한국에서의 사목 활동 70년. 그리고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고 천노엘 신부님의 유지에 따라 유해 일부가 이곳 천주교 담양공원묘원에 안치돼 있습니다.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한평생 힘쓰신 신부님의 뜻이 계속해서 이 땅에 이어질 수 있길, 그리고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천주교 담양공원묘원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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