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공지
천 노엘 신부님 추모미사 옥현진 대주교님 강론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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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 노엘 신부님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하였습니다. 천 신부님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1956년 스물네 살에 사제가 되어 이듬해인 57년에 한 달간 배를 타고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의 이곳 광주까지 선물처럼 오셨습니다. 광주대교구에서 본당을 맡아 열정적으로 24년 동안 사목하셨고, 1981년부터 엠마우스 장애인 그룹홈을 만들어 그들의 권익을 위해 43년 동안 헌신해 오셨습니다. 스물다섯 살 청년으로 오셔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평생을 사목과 발달장애인을 위해 애쓰시다가 지난 6월 1일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병을 진단받고 광주대교구와 무지개공동회에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으려 본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으셨지만, 끝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입원해 계실 때 아일랜드로 병문안을 간 후임 신부와 무지개공동회 직원에게 하신 말씀도 “엠마우스 정신으로 (장애인) 식구들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직원들도 꼭 친구처럼 잘 해주고, 인내심 많이 갖고 참고, 참고 (장애인) 식구들에게 잘하라”고 마지막까지 장애인 식구들을 챙기셨습니다.
본당 사목 활동 중에 방문하였던 무등갱생원 경험이 당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갱생원에는 장애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발달 장애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만 있는 모습을 보며, 천 신부님은 그들에게 무척 마음이 쓰이셨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19살 지적장애 소녀 김여아 마리아의 만남과 그 아이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장애인 복지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측에서 무연고자인 김 마리아의 병원비를 내는 대신 시신을 기증하여 연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제안에 천 신부님은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려지고 사회에서도 차별받고 살아왔는데 그렇게 가여운 아이를 마지막 가는 길까지 외롭게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며, 사비로 병원비를 내고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워주셨습니다. 신부님의 마음과 영성이 그 묘비 문구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사회를 용서해 주시렵니까, 교회를 용서해 주시렵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당신을 외면했습니다.”라고...
사제서품 25주년을 맞이하여 안식년 동안 복지 선진국가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각국에 사회복지 전문가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듣고 장애인 복지에 대한 뚜렷한 방향성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장애인들에게 인간다운 대우를 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수용시설보다는 지역사회 중심의 소집단 복지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살 준비를 하셨습니다.
1981년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엠마우스를 만들어 그들과 한 가족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이 “엠마우스 친구들과 살기 힘드시죠? 라고 물어볼 때면, 신부님은 오히려 그들을 통해 행복할 때가 더 많았고 그 친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큰 빚을 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이고, 다정한 사람이 무엇이며, 진실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교육보다 큰 것임을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1999년에 제1회 한국 장애인 인권상을 수여하려 하자 자신은 당연히 해야 하는 하느님의 일을 했다며 어떠한 상도 개인 자격으로 받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이후에 받은 많은 상들은 장애인 당사자와 법인이 수상하였습니다.
천 신부님은 항상 장애인을 ‘가족’으로 여기며, 친구요 아버지며 할아버지로 살아오셨고, 그들의 권리와 자립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셨습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가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장애인이 교회의 스승이자 예수님께 가는 길을 인도하는 이로서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회의 선물인 발달 장애인이 교회 안에서 합당한 위치와 대우를 받기를 바라셨고, 저에게도 여러 번 찾아오셔서 교구 사제들의 더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셨습니다.
아일랜드 유가족들이 천 신부님 유해 일부를 이곳 빛고을로 모시고 오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담양 성직자 묘지에 천 신부님을 모시고 당신의 삶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지개공동회 식구들도 천 신부님이 생각나면 가서 눈물 흘릴 장소가 생겼습니다. 천 신부님의 묘비에는 “신부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 사회와 교회가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 당신을 닮은 천 노엘 사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